두 책의 우연한 만남, 책짝꿍 구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책짝꿍은 매월 네 번째 수요일에 발행됩니다. |
|
|
어김없이 '건강 챙기기'를 다짐하는
새해를 보내고 있다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 사이에서 두 권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었습니다. 게다가 1호 메일 준비니까요. 마침 새해이다 보니 새해 다짐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계획, 목표 이런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새해 초에는 작은 다짐을 해보고는 하니까요. 구독자 분들도 이 글을 통해 각자 계신 곳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2024년 1월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
|
|
만다라트 계획표를 아시나요?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만다라트가 유명해지면서 만다라트 계획표를 활용하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 제가 해본 건 81개 칸으로 이루어진 만다라트 계획표였어요. 가장 가운데 칸에 핵심 목표, 그 칸을 둘러싼 8개 칸에 그 핵심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위 목표, 각각의 하위 목표가 뻗어나간 부분에는 하위 목표 이루기 위한 세부 과제를 적는 식이에요. 81개나 되는 칸을 ‘할 일'로 채우는 것이다 보니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저처럼 빈칸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꾸역꾸역 81개를 다 채우기도 하고요. 제 만다라트의 전체적 기조는 '2023년보다 적게 일하자'였습니다. 일만 하며 살다 보니 작년 연말쯤에는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2024년 하위 목표 여덟 칸 중 두 칸에 ‘유연한 마음'과 ‘체력'이 자리 잡았습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대화하다 누가 어느 회사에 다닌다더라, 연봉이 얼마라더라, 누가 무슨 상을 받았다더라 같은 말이 꽤 자주 오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대화가 모두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도 생각했어요. 고연봉, 높은 지위, 대단한 스펙 같은 걸 원하지 않는 사람이나, 조금 느리게 혹은 자기 속도에 맞춰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도요. 일을 덜 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수입이 줄어 대출 상환 완료와는 더욱 멀어질 분명한 미래 때문에 아득한 기분에 종종 빠졌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자기만의 기준이 튼튼하다면 불안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면서 많은 것이 괜찮아졌습니다. 숨을 고르고 그 기준점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반복하면서요.
|
|
|
『불안을 관리하면 인생이 관리된다:
기분에 지지 않고 삶의 통제력을 되찾는 몸 중심 심리연습』
『불안을 관리하면 인생이 관리된다』의 부제에는 ‘몸 중심 심리연습'이라는 표현이 들어있습니다. 심리치료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소매틱(somatic) 치료입니다. 소매틱 치료는 심리치료 과정에서 몸의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인데요. 저자는 “인간의 신경생물학적 시스템에는 지난날 겪었던 경험에 대한 암묵기억(implicit memory, 의식적으로 떠올리지는 못하지만 행동, 학습 등에 영향을 주는 기억)이 어마어마한 영역을 차지한다”라고 말합니다.
암묵기억은 자신도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자율신경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현재의 행동이나 지각, 판단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의지를 다지는 것만으로(마치 새해 결심처럼..) 내가 생각하는 방식, 불안을 겪는 방식을 바꿔내긴 어렵습니다. 이 책은 암묵기억에 다가가 그 기억을 감각하고, 관찰하고, 표현하고, 돌아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 앞에 닥친 일이 과거와 같은 일이 아닌데도 암묵기억에 의해 과거와 유사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도 과거의 나와는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이기도 하고요.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형성된 부정적인 암묵기억으로 지금의 일상이 괴롭다면 이 책으로부터 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
|
|
『불안을 관리하면 인생이 관리된다』를 읽으며 감정, 생각, 마음을 몸과 떨어진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실은 그 둘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몸은 관찰될 수 있고 비교적 명료하게 파악될 수 있는 하나의 일관된 대상인 것 같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아네마리 몰의 『바디 멀티플』은 ‘몸은 하나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병원에서 동맥경화증 환자들의 진료 과정을 관찰합니다.
통증을 느끼는 환자가 있고, 환자로부터 증상에 관한 설명을 듣고 환자의 몸을 관찰하는 의사가 있으며, 환자의 몸을 측정하는 검사실의 테크니션이 있고, 그밖에 병원을 구성하는 온갖 사람과 장비, 건물이 있습니다. 환자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더라도 테크니션과 그가 작동시키는 검사 장비는 환자의 몸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이 두 가지 진술 사이에서 위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개입의 대상과 치료의 목표가 확실해야 하니까요. 이러한 복수의 동맥경화증들은 조정 과정을 거쳐 ‘하나의 동맥경화증'이 됩니다.
저자는 ‘치료해야 할 질병’은 복합적인 대상이라 말합니다. 그렇기에 진단과 치료의 과정은 끊임없는 관찰과 협의의 과정을 통해 의료진과 환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네마리 몰은 질병과 몸의 다중성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명확한 실재인 몸과 질병이 있고, 어떤 관점으로 그것을 보는가에 따라 재현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라 설명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몸이 명료하고 단일한 실체인지를 질문합니다.
만다라트 계획표에 적은 ‘유연한 마음'과 ‘체력'이 앞서 소개한 두 권의 책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핵심적인 (주로 고통스러운) 기억에 다가가기 위해 단단한 결심이 필요하겠지만, 거기에 더해 내가 그 기억에 다가가더라도 나는 안전하게 그것을 관찰할 수 있고 새롭게 그 기억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신뢰와 부드러운 마음이 필요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시 계획표를 살펴보니 ‘체력' 칸에 온갖 검사와 측정, 관찰 등을 적어 놓았네요. 이 또한 제 몸을 포착하는 여러 길 중 하나겠지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자주 생각해야겠습니다.
|
|
|
이번 호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책짝꿍 공유하기 버튼을 클릭해 주변 분들에게 링크를 나눠주세요. 앗사에서 출간 준비 중인 책 소식도 책짝꿍을 통해 종종 전하겠습니다. 😀
책짝꿍 2호에서 소개할 책은 『야생 숲의 노트』,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입니다. 다음 달에 또 만나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