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책의 우연한 만남, 책짝꿍 구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책짝꿍은 매월 네 번째 수요일에 발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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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요
월 1회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고 나면 한 달이 평소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벌써 책짝꿍 보낼 때가 되었다니!’하고 놀랐습니다. 시간은 자꾸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요. 마음에 드는 책을 읽다 보면 이 얘기도 하고 싶고 저 얘기도 하고 싶고... 그러면 며칠 더 생각해보고 더 좋은 얘기를 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느 순간에 그만두고 보내야 합니다.
요즘 해양 포유류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있어요. 그 책에는 수십 종의 고래가 나옵니다. 영어로 된 책이라 각 종의 이름이 영어로 적혀있어요. 한국어로 되어있었더라도 저는 아마 그 고래들의 이름을 보고 생김새나 특징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을 거예요. 고래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봅니다. 사진을 봅니다. 한국에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기록해둡니다. 저만의 고래 번역어 사전을 만들고 있죠. 이 책을 번역하면서 무언가를 ‘안다’라고 할 때 그 '안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의 이름을 알고 생김새를 알고 몇 가지 특성을 안다면 '안다'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이러한 방식의 앎이 인간의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래는 그런 방식으로 알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인간이니 지금은 이렇게라도 알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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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새가 많습니다. 새들이 제가 살고 있는 빌라 외벽을 쪼아요. 새가 찾아오면 고양이 망고가 벽을 한참 바라봅니다. 그러고는 새를 향해 기지개를 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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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중인 책의 영향일까요. 부쩍 주변 동물에게 관심이 갑니다. 최근에는 뒷산에 오를 때마다 새를 기다립니다. 새를 보거나 멀리서 들려오는 새 소리를 들어도 그 새가 어떤 새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이게 굉장히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자주 만나는데 저 새가 어떤 새인지 제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게 기이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아마 어떤 사람과 동네 골목에서 자주 마주쳤다면 그 사람을 조금은 궁금해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새에게는 그런 궁금함이 생기지 않았었더라고요.
집 뒤에 봉산이라는 산이 있어요. 높지 않은 산인데요. 집에서 봉산 입구까지 걸어서 5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언제든 도망갈 곳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지금도 일주일에 몇 번씩 산으로 도망 다녀오곤 합니다. 그러다 봉산의 생태를 조사하는 분들을 보게 되었어요. 한국에 있는 땅 어디나 그렇듯 봉산도 개발에서 자유롭지 않다보니,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하고 봉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생긴 거죠. 그런 생각을 하고, 하고, 하다 보니 제가 살고 있는 이 집 밑에 깔린 땅이 50년 전엔, 100년 전엔, 200년 전엔 어떤 곳이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새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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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숲의 노트』
시미언 피즈 체니 지음, 남궁서희 옮김, 프란츠
요즘엔 전자책을 많이 삽니다. 쌓여가는 종이책 때문에 방 전체가 숨을 못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거든요. 하지만 반드시 종이책으로 읽고 싶은 책들이 있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해 드릴 두 책이 그렇습니다. 제가 두 책을 함께 고른 건 그림 때문입니다. ‘자연’을 통과한 글들로 이루어진 두 책에는 아름다운 삽화가 곳곳에 들어 있습니다. 그 장을 오려내 벽에 붙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요.
『야생 숲의 노트』는 1818년 미국에서 태어난 시미언 피즈 체니의 책입니다. 그는 1885년부터 새소리를 악보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는 동부파랑지빠귀, 울새, 노래참새, 검은머리박새 등 수십 종의 새소리가 악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 새의 이름과 특징, 음색에 대한 설명, 그 새의 음률과 리듬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새의 그림과 악보가 있죠. 악보의 음표들을 연결하면 어떤 멜로디가 나올지 궁금해졌어요. 컴퓨터 키보드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 악보를 연주했습니다. 그 소리에 숲 소리를 더해 녹음해 봤어요.
제가 녹음한 건 동부파랑지빠귀의 소리입니다. 물론 저자가 악보로 옮긴 것을 연주한 것입니다. 실은 이것만으로는 동부파랑지빠귀의 소리가 어떤지 잘 감이 오지 않더라고요. 찾다 보니 새 이름을 검색하면 그 새의 소리를 들려주는 사이트가 있어요. 영어로 검색해야 하지만 이 책에는 새의 영어 이름도 적혀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동부파랑지빠귀는 Eastern bluebird라고 해요.
음. 비슷한가요? 저자가 책 서두에 쓴 말을 다시 읽었습니다. “사실 따라 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듣지 않고서는 새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p.22)”. 이 책에서 가장 길게 그은 밑줄은 다음 문장 아래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노래를 만들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노래의 정신도 그 틀 안에 갇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음악을 만들어야 했다(p.20)”. 새소리를 악보로 기록했던 게 인간의 방식으로 새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색개똥지빠귀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새인데요. 이 새는 Cat-bird, 고양이새라고도 불린대요. 이 새의 소리가 고양이 울음소리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아침마다 밥 달라며 저를 깨우는 고양이들의 소리와 꽤 닮아 여러 번 다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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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빌리 렌클 그림, 최정수 옮김, 을유문화사
짧은 글 여러 편으로 구성된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에는 작별이 자주 등장합니다. 책 속에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저자의 부모님이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라는 제목이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 ‘Every time we say goodbye’에서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이런 가사로 시작합니다. Every time we say goodbye, I die a little.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어 가요.
이 책은 작가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가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자연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정원에는 새와 개, 토끼, 거미와 나비가 오고 갑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자연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느끼고 싶어 하는가와 무관하게 존재합니다. 인간은 수련이 한가득 핀 연못을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수련이 연못을 가득 채우면 연못이 질식합니다. 빛과 산소를 차단합니다. 곧 그곳에 사는 개구리와 뱀도 사라집니다.
자연은 작가가 경험하는 상실과 함께 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어가지만, 그 죽어감이 어떤 체계에 속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합니다. 책에 실린 글 중 특히 좋았던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새들은 모두?’라는 글입니다. 작가와 작가의 아이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아이는 세 살입니다. 죽은 새를 보고 처음 죽음을 배우게 됩니다. 처음 죽음을 배운 아이는 끊임없이 죽음에 질문을 붙입니다. '새들은 모두 죽어요?'라는 질문은 '물고기들은?', '청설모들은?', '선생님들은?', '식료품점에 있는 이 사람들은?', '엄마들은?'으로 이어지다 “내가 죽게 될까요?”에 이릅니다.
나라면 어떻게 대답해주었을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안 죽어'라고 거짓말을 하진 않았겠지만 '너는 오래오래, 아주 오래 살게 될 거야'라며 회피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잘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런 책을 읽으며 약간의 답을 찾고 잘 챙겨둡니다. 가령 이런 문장을 아껴둡니다. “별목련이 제철보다 몇 주 이르게 만개했지만, 스노문은 늘 그랬던 것처럼 우표만 한 우리 정원의 검은 나뭇가지 사이로 아름답게 떠오른다. 우리의 모든 원한에 영향받지 않고 우리의 절망에 동요하지 않는 모습으로(p.52)".
이제 곧 3월이네요. 많은 것들이 “우리의 모든 원한에 영향받지 않고 우리의 절망에 동요하지 않는 모습으로” 만개할 계절이 다가옵니다. 만남과 작별을 찬찬히 맞이할 수 있길 바라며 이번 호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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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짝꿍 3호에서 소개할 책은 『루시』,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입니다. 다음 달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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